중동발 유가 급등 속에서도 정유·항공·화학의 실적과 주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원가 부담의 크기, 유가 상승이 만드는 재고평가 효과, 오른 비용을 제품값에 넘기는 전가력이 업종마다 달라 성적표가 갈리기 때문이다. 유가 헤드라인만 보지 말고 정제마진과 제품 스프레드 같은 실적 지표를 업종별로 확인하는 것이 종목 판단의 핵심이다.

중동 긴장이 다시 유가를 밀어 올리면서 뉴욕증시가 흔들렸다. 유가 급등은 흔히 '석유 관련주 호재'로 뭉뚱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정유·항공·화학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 분기에도 정유는 웃고 석유화학은 우는 장면이 반복됐다. 업종주를 고를 때 봐야 할 변수는 세 가지다. 원가 부담, 재고평가, 그리고 전가력이다.

Taylor Hunt
유가 상승은 모든 업종에 원가 부담이지만 체감 크기가 다르다. 항공은 연료비가 비용에서 큰 몫을 차지해 유가 급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는다. 석유화학은 원료인 나프타가 원유에서 나오므로 원가가 함께 뛴다.
정유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원유가 원가인 것은 맞지만, 정유사의 제품값도 유가에 연동돼 움직인다. 원가만 보고 '유가 오르면 손해'라고 단정하면 정유업의 핵심을 놓친다.
정유사는 원유를 사서 쌓아 둔 뒤 정제해 판다. 유가가 오르면 싸게 사둔 재고의 평가 가치가 올라 재고평가이익이 잡힌다. 실제로 한 정유사의 지난 2분기 실적은 재고평가 효과와 정제마진 상승이 함께 작용해 개선됐다.
여기엔 반전이 있다. 재고평가이익은 어디까지나 장부상 효과라, 유가가 꺾이면 곧바로 재고평가손실로 돌아온다. 유가 급등이 정유주 호재라는 통념이 반만 맞는 이유다. 반면 항공사는 연료를 사서 바로 태우기 때문에 재고평가라는 개념이 거의 없고, 화학도 정유만큼 즉각적이진 않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건 전가력이다. 정유는 휘발유·경유 같은 제품값이 유가에 빠르게 연동돼, 오른 원가를 제품값으로 넘기기 쉽다. 이 차이가 정제마진이고, 업계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마진이 이 선을 넘으면 유가가 올라도 돈을 번다.
항공은 유류할증료로 비용을 일부 넘기지만 시차가 있고, 운임을 올리면 여행 수요가 줄 수 있어 전가에 한계가 있다. 화학은 가장 취약하다. 전방 수요가 약하면 오른 나프타 값을 제품에 반영하지 못해 스프레드가 쪼그라든다. 같은 원유에서 출발하고도 "정유는 웃고 석화는 운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 여기 있다.
정리하면 세 변수는 한 방향으로 겹친다. 원가 부담은 세 업종 모두 지지만, 재고평가 효과는 정유에 쏠리고, 전가력은 정유에서 항공, 화학 순으로 약해진다. 유가 급등 국면에서 정유가 먼저 주목받는 것은 세 변수가 동시에 유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유가 뉴스만으로 종목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실적에서 다음 숫자를 확인하면 된다.
유가가 올랐다는 헤드라인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 상승이 재고평가라는 일회성 효과인지, 마진으로 이어지는 실속인지, 아니면 전가하지 못한 원가 부담인지를 가려 보는 것이 업종주 투자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