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이 15주째 내렸지만 이 하락은 정유주 실적에 곧바로 호재로 반영되지 않는다. 정유사 이익은 정제마진과 재고평가손익으로 나뉘는데, 유가가 빠르게 떨어지면 수개월 전 비싸게 사둔 원유에서 재고평가손실이 나 단기 실적을 오히려 누른다. 다음 분기 실적을 볼 때는 정제마진과 재고손익, 유가 방향을 나눠서 확인해야 한다.

직관적으로는 원유값이 싸지면 정유사 원가가 줄어 이익이 늘 것 같다. 하지만 정유주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휘발유는 8월 넷째 주 전국 평균 L당 1,861.3원으로 15주 연속 내렸고 두바이유도 배럴당 9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이 하락이 정유사 실적에 반영되는 방식은 시차와 회계 처리 때문에 복잡하다.
핵심은 정유사 이익이 두 개의 다른 성격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하나는 제품을 팔아 남기는 정제마진, 다른 하나는 갖고 있는 재고의 가치 변동에서 나오는 재고평가손익이다. 유가 하락은 이 둘에 정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

거열 박
정유사는 원유를 사서 정제해 제품으로 파는 데까지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 지금 파는 휘발유의 원료는 몇 달 전 시세로 사둔 원유다. 이 시간차를 래깅 효과라고 부른다.
유가가 오를 때는 이 시차가 실적을 부풀린다. 싸게 사둔 원유가 비싸진 제품값에 실려 팔리니 재고이익과 래깅 효과가 겹쳐 이익이 커진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정유사들의 좋은 실적은 상당 부분이 이런 재고 관련 이익에서 나온 '착시성 호실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가 걷히자 2분기부터 실적 부담이 드러나며 방어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반대로 지금처럼 유가가 빠르게 내릴 때는 같은 시차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비싸게 사둔 원유로 만든 제품을 떨어진 시세에 팔아야 하니 마진이 눌린다.
더 직접적인 타격은 재고평가손실이다. 보유한 원유와 제품 재고의 장부가치가 유가 하락분만큼 깎이면서 회계상 손실로 잡힌다. 유가가 완만하게 내리면 원가 부담이 줄어드는 긍정적 면이 살지만, 짧은 기간에 급락하면 재고평가손실이 그 이점을 덮어버린다. 업계에서 유가 하락 전망에 하반기 실적 먹구름을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가 하락이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어도 정유주에는 단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유사 실적을 예단하려면 유가 방향 하나만 봐서는 안 된다. 다음 지표들을 나눠서 확인하는 편이 낫다.
정리하면 유가 하락은 정제마진에는 시차를 두고, 재고평가에는 즉각 반영된다. 지금 국면에서 정유주를 볼 때는 재고손실이 얼마나 나느냐와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위에서 버티느냐를 함께 저울질하는 것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