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형주의 '저PER'은 대개 지난 실적이 아니라 아직 벌지 않은 추정 이익에 기댄 선행 PER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후행 기준 수십 배였던 PER이 올해 추정 이익을 넣으면 한 자릿수로 낮아지지만, 증권사 간 이익 전망 편차가 두 배에 달해 그 숫자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사기 전에는 PER이 선행인지 후행인지, 그 전제가 된 이익 추정치의 신뢰도와 방향부터 확인해야 한다.
반도체 대형주가 급락하면 '이제 PER이 낮아져 싸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사기 전에 이 말부터 뜯어봐야 한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이다. 분모인 이익을 어느 시점으로 잡느냐에 따라 숫자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확정 실적으로 계산하면 후행 PER, 올해나 내년 추정 이익으로 계산하면 선행 PER이다. 뉴스에 나오는 '저PER'은 거의 선행 PER이다. 즉, 아직 벌지 않은 이익을 미리 분모에 넣어 싸 보이게 만든 숫자다.
Photo by Umberto on Unsplash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실제 숫자로 드러난다.
| 종목 | 지난해 실적 기준 | 올해 추정 기준 |
|---|---|---|
| 삼성전자 | 약 45배 | 약 6배 |
| SK하이닉스 | 약 33배 | 약 5.2배 |
후행으로 보면 수십 배라 비싸지만, 올해 추정 이익을 넣으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진다. 선행 PER이 낮다는 말은 '앞으로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전제가 추정일 뿐이라는 데 있다. SK하이닉스의 2026년 영업이익 전망만 해도 한 증권사는 140조원, 다른 쪽은 280조원을 제시했다. 두 배 차이다. 분모가 이렇게 흔들리면 거기서 나온 저PER도 신기루가 될 수 있다.
주가가 빠졌다고 이익 전망까지 나빠진 것은 아니다. 둘을 분리해 봐야 한다.
최근 조정의 원인으로는 메모리를 사는 쪽과 그 돈을 대는 쪽 사이의 지속 가능성, 이른바 AI 투자 순환 논란이 꼽힌다. 실제 실적이 깨진 게 아니라 기대와 수급, 심리가 흔들린 결과라는 진단이다. 이 경우 주가는 내렸는데 이익 전망은 유지되므로 선행 PER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
반대로 메모리 업황이 꺾여 이익 추정 자체가 하향되면, 주가가 내려도 PER은 생각만큼 싸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가가 빠졌으니 싸다'는 한 문장으로 판단하면 위험하다. 미국 엔비디아의 12개월 선행 PER이 한때 60배를 넘었다가 조정 국면에서 10년 평균인 35배 안팎으로 돌아온 것도, 주가와 이익 기대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 결과다.
첫째, 눈앞의 PER이 선행인지 후행인지부터 가른다. 둘을 섞으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둘째, 선행 PER이라면 그 분모가 된 이익 추정치를 본다. 증권사마다 전망이 크게 벌어져 있다면 그 숫자의 신뢰도는 낮다고 봐야 한다.
셋째, 이익 추정치가 최근 상향되는지 하향되는지 방향을 확인한다. 컨센서스가 꾸준히 올라가는 종목과 깎이는 종목은 같은 PER이라도 의미가 다르다.
넷째, 지금의 주가 하락이 실적 훼손 때문인지, 심리와 수급 때문인지 구분한다. 전자라면 더 기다릴 이유가, 후자라면 분할로 접근할 여지가 생긴다.
다섯째, 이 숫자들을 본인의 투자 기간과 맞춰본다. 올해 추정 이익에 기댄 저PER은 그 이익이 실제로 실현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고평가냐 아니냐는 하나의 숫자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PER이라는 숫자가 어떤 이익을 전제로 만들어졌는지, 그 전제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함께 봐야 비로소 판단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