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파기환송심 재산분할금 9440억원 중 7000억원을 수용하고 SK실트론 지분과 얽힌 2440억원만 대법원에서 다투기로 했다. 승산이 낮은 쟁점을 접고 계열사 지분 방어에 집중하는 전략적 후퇴로, 분쟁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풀이된다. 재산분할은 회사가 아닌 오너 개인의 현금 부담이라, 지분 매각이나 담보 공시가 나오기 전까지 그룹주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다툼의 범위를 크게 줄였다. 지난 7월 24일 서울고법 가사1부 파기환송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는데, 최 회장 측은 8월 31일 상고 취지를 줄이는 신청서를 내며 이 가운데 7000억원은 수용하기로 했다.
남은 쟁점은 2440억원이다. SK실트론 지분과 얽힌 금액으로, 최 회장 측은 혼인 파탄 이후인 2017년에 별도로 인수한 지분이어서 나눌 대상인 특유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 회장 측은 "분쟁이 오래 이어진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7000억원까지는 수긍했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 이 결정을 읽는 방식은 비교적 분명하다. 승산이 낮은 쟁점을 접고 계열사 지분이라는 핵심 방어선에 법리 공방을 집중하는 '전략적 후퇴'라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다툴 전선을 좁혀 분쟁의 불확실성 자체를 줄인 셈이다.

Sophie Otto
투자자 입장에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이 돈의 성격이다. 재산분할금은 SK라는 회사가 갚는 돈이 아니라 최태원 개인이 부담하는 현금이다.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재산분할 판결 자체가 SK 계열사의 실적이나 펀더멘털을 직접 훼손하지는 않는다.
오너 리스크가 주가에 반영되는 통로는 조금 다른 데 있다. 최 회장이 거액의 현금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만약 지주사인 SK㈜ 지분을 대량으로 팔거나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면, 이는 지배구조의 안정성과 주식 수급에 직접 영향을 준다. 반대로 배당이나 대출 등 지분을 흔들지 않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면, 그룹주가 받는 충격은 제한적이다. 참고로 다투는 대상인 SK실트론은 상장사가 아니어서, 이 쟁점의 결론이 상장된 그룹주 지분의 매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구조도 아니다.
이번 전략적 후퇴가 시선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투는 금액을 줄여 SK실트론 등 계열사 지분에 대한 방어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배구조의 핵심을 지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지배구조 측면의 리스크는 오히려 완화되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면 남은 대법원 절차를 투자 리스크로 계산에 넣어야 할까. 판단 기준은 이렇게 세울 수 있다.
핵심 변수는 판결의 승패보다 '현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최 회장이 지분을 대량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한다는 공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재산분할이 그룹주에 미치는 직접적인 수급 부담을 실체로 보기 어렵다. 이미 7000억원을 수용해 지급 규모의 큰 틀이 정해진 상황이라면, 시장은 남은 2440억원의 결론보다 그 지급 방식에 더 주목하게 된다.
정리하면, 지금 확인할 것은 두 가지다. 대법원이 SK실트론 지분 쟁점을 어떻게 결론짓는지, 그리고 최 회장 측이 지급 자금을 지분 매각으로 마련하는지 여부다. 이 두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 재산분할 이슈는 그룹주에 결정적 악재라기보다 지켜봐야 할 변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