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파워 창립자 빌 게이츠가 1년 만에 방한해 8월 14일 정기선 HD현대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과 만나 나트륨 소형모듈원전(SMR) 협력을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논의했다.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 원자로 용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올라서며 협력이 투자에서 제조로 넓어졌지만, 본계약과 공급 물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핵융합' 확장은 이번 회동의 확정 의제가 아니라 HD현대의 과거 ITER·KSTAR 제작 이력에서 나온 기대인 만큼, 테마를 볼 때는 확정된 계약과 기대를 구분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이자 차세대 원전 기업 테라파워를 세운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8월 13일 한국을 찾았다. 방한은 지난해 8월 이후 1년 만이고, 핵심 의제는 소형모듈원전(SMR) 협력 확대였다.
이튿날인 8월 14일 서울에서 정기선 HD현대 회장,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정 회장과 게이츠 이사장으로선 올해 1월 다보스포럼 이후 7개월 만의 재회다. 앞서 SK를 이끄는 최태원 회장도 게이츠 이사장과 만났다.
이 회동이 주목받은 이유는 격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HD현대중공업과 테라파워, 현대건설은 지난 5월 나트륨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3자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이번은 그 뒤 각 기업 최고경영진이 처음으로 마주 앉아 진전 사항을 점검한 자리였다. 협력의 무게가 실무 협약에서 총수급 논의로 옮겨간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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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구조는 비교적 뚜렷하다. 테라파워가 나트륨 원자로 기술을 대고, HD현대중공업이 주기기를 만들고, 현대건설이 EPC(설계·조달·시공)를 맡는 그림이다. HD현대중공업은 345메가와트급 나트륨 원자로의 원자로 용기와 원자로 인클로저 시스템(RES)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여기서 투자자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HD현대 스스로 밝혔듯 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후속 물량이나 본계약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공급 물량과 금액, 상용화 시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관련 설명은 '반복 생산에 나설 경우'라는 조건부에 머물러 있다.
밸류체인을 넓게 보면 주기기 제조와 원전 EPC 외에도 대형 단조·기자재, 나트륨 원자로용 핵연료와 냉각재 같은 영역이 함께 거론된다. SK와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테라파워에 각각 지분을 투자해 둔 상태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연결고리가 곧바로 매출로 잡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이번 협력의 실체는 SMR, 그중에서도 핵분열 방식인 나트륨 원자로다. 종종 함께 언급되는 '핵융합'은 이번 회동에서 확정된 사업 의제가 아니다.
연결점이 생긴 배경은 HD현대의 제작 이력에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진공용기 섹터와 한국의 핵융합 장치 KSTAR 관련 대형 구조물을 만든 경험이 있고, 이 정밀 제작 역량이 SMR 사업을 맡을 수 있는 근거로 소개된다. 즉 핵융합은 현재 진행 중인 계약이 아니라 '이런 제작 능력이 있으니 확장할 수도 있다'는 기대에 가깝다.
정리하면 지금 확인된 사실과 기대는 층이 다르다. 확정된 것은 3자 협약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그리고 CEO급 회동이라는 진전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은 본계약 체결과 공급 물량, 상용화 시기, 그리고 핵융합으로의 확장이다.
테마의 재료가 '뉴스'인지 '계약'인지를 나누는 습관이 이런 국면에서는 특히 유효하다. 총수급 만남과 우선협상대상자 소식은 기대를 키우는 재료이지, 아직 실적으로 굳은 숫자는 아니다. 본계약과 첫 물량 발주가 확인되는 시점이 기대와 실체가 갈리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