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휘발유값이 16주째 내리는 동안 두바이유는 배럴당 99.9달러로 급등했지만, 정유사 수익은 소매가가 아니라 정제마진과 재고평가손익에서 갈린다. 유가 상승은 재고평가이익과 정제마진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나, 상승분을 제품값에 전가하지 못하면 오히려 마진이 눌린다. 정유주를 볼 때는 유가 방향보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과 경유·항공유 크랙, 재고평가손익 반영 시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주유소 휘발유값은 9월 첫째 주까지 16주 연속 내려 리터당 1,860원이 됐다. 같은 주 두바이유는 배럴당 99.9달러로 7.6달러 급등했다. 소비자에겐 엇갈림이지만, 정유주 투자자에겐 사실 하나의 시차 문제다.
국내 소매가는 몇 주 전 낮았던 국제유가가 2~3주 늦게 반영된 결과다. 반면 정유사 수익성은 원유를 사서 제품을 팔 때 남기는 정제마진과 보유 재고의 평가손익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소매가가 내리는 국면에도 정유사 실적은 정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
정유사 실적을 흔드는 1차 변수는 원유 가격 자체가 아니라 제품 마진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혼선이 줄어든다. 원유값이 올라도 그만큼 제품값이 따라 오르지 못하면 남는 게 없고, 원유값이 내려도 제품 수요가 탄탄하면 마진은 커진다. 소매 휘발유값 뉴스와 정유주는 애초에 서로 다른 시계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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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상승은 정유사에 기회이자 함정이다. 좋은 쪽부터 보자. 유가가 오르면 이미 싸게 사둔 원유와 재고의 가치가 올라 재고평가이익이 잡힌다. 원유가 상승분이 휘발유·경유 가격에 전가되면 정제마진도 함께 벌어져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난다.
문제는 전가가 늘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유가는 올랐는데 경기 둔화로 제품 수요가 약하면, 상승분을 제품값에 얹지 못해 정제마진이 오히려 눌린다. 실제로 유가 상승에도 정제마진과 석유화학 제품가가 함께 내리는 구간이 나타난 적이 있다. 재고평가이익도 방향이 바뀌면 사라진다. 한 정유사는 2분기 유가 상승으로 잡았던 재고평가이익 2천억원이 3분기 유가가 되밀리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단에서 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이번 두바이유 급등은 소비가 늘어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란의 긴장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하루 15척에서 3척으로 줄어든 공급 우려에서 나왔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60% 이상이 이 해협을 지난다.
공급발 유가 상승은 단기적으로 재고평가이익에 유리하다. 다만 지정학 리스크가 풀리면 유가가 빠르게 되돌아 이익이 반납될 수 있고, 원유 조달 비용 상승이 수요를 눌러 정제마진을 압박할 수도 있다. 상승의 성격이 수요 회복이 아니라는 점은 지속성을 낮게 보는 근거가 된다.
유가 그래프만 보고 정유주를 사고파는 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순서대로 확인할 지표는 이렇다.
| 지표 | 무엇을 말해주나 |
|---|---|
|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 | 정유 본업의 수익성, 실적의 1차 변수 |
| 경유·항공유 크랙 | 운송용 비중 큰 국내 정유사 실적과 직결 |
| 재고평가손익 | 유가 방향이 바뀌면 이익도 반전 |
| 유가 상승의 원인 | 수요발이면 지속, 공급발이면 되돌림 위험 |
국내 정유사는 운송용 제품 비중이 63%를 넘어, 휘발유보다 경유·항공유 마진이 실적을 좌우한다. 증권가는 하반기 복합정제마진이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지만, 이는 확정이 아니라 공급 차질을 전제한 시나리오다. 유가가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유주 방향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