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16달러, 항공주 발목 잡는 세 가지
중동발 공급 불안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16달러까지 올랐지만 항공주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한다. 연료비가 항공사 영업비용의 30% 안팎을 차지하는데, 유류할증료로는 상승분의 절반 정도만, 그마저 한두 달 시차를 두고 요금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유가 민감도는 헤지 비율과 환율, 수요·노선 구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실적에서 유류비 비중과 유류할증료 단계, 탑승률을 함께 봐야 한다.
유가는 오르는데 항공주는 왜 못 오를까
중동 공급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뛰었다. 파이낸셜포스트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브렌트유는 배럴당 116.72달러, WTI는 103.27달러로 마감해 하루 새 3% 넘게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원유운반선 피격이 10월에만 11척 발생하는 등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항공사는 기름을 많이 쓰니 유가가 오르면 타격이 크다. 그런데 주가는 이 타격을 미리 당겨 반영한다. 유가가 오른 당일 항공주가 약세인 건, 앞으로 비용이 늘 것이라는 예상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 비용 증가는 몇 달 뒤 실적에 나타난다.
연료비는 비용의 30%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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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비는 항공사 영업비용에서 가장 큰 항목 중 하나다. 회사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30% 안팎을 차지한다. 비중이 이 정도면 유가가 10% 오를 때 전체 비용이 3%가량 밀려 올라간다.
항공업의 영업이익률은 대체로 한 자릿수다. 그래서 이 정도 비용 증가만으로도 분기 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유가에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1차적인 이유다.
전가·시차·환율이 겹치는 구조
유가 상승분이 그대로 손실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완충장치마다 시차와 한계가 있다.
핵심은 유류할증료다. 항공사는 늘어난 연료비를 승객 요금에 얹지만, 전가할 수 있는 금액은 상승분의 절반 수준으로 본다. 더 중요한 건 시차다. 유류할증료는 전전월 16일부터 전월 15일까지의 싱가포르 항공유(MOPS) 평균으로 매달 책정된다. 유가가 오른 직후 분기에는 비용만 먼저 늘고, 요금 전가는 한두 달 뒤에야 따라붙는다.
환율도 겹친다. 연료는 달러로 사고 항공기 리스 부채도 달러 표시인 경우가 많다. 유가가 오를 때 달러가 강세면 원화 환산 부담이 더해진다.
헤지는 충격을 줄여준다. 대한항공은 연간 사용량의 약 50%, 아시아나는 약 30%를 헤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헤지 비율이 높으면 유가가 내릴 때 이익도 그만큼 덜 늘어난다.
지난봄 급등기가 보여준 것
올해 봄 유가 급등기에 이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5월 유류할증료는 33단계 중 최고인 33단계가 적용돼 대한항공 인천~뉴욕 왕복 기준 112만8000원까지 올랐다. 삼성증권은 대한항공의 올해 연료유류비가 지난해 4조3140억원에서 6조3800억원으로 약 48% 늘 것으로 봤다.
요금을 올려도 상승분을 다 메우지 못하고, 그 전가마저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흐름이 반복됐다. 지금의 유가 급등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유가 말고도 봐야 할 축
항공주를 유가 하나로만 보면 판단을 그르친다. 이익을 가르는 다른 변수가 있다.
수요가 첫째다. 여객 수요가 강하면 요금을 올려 연료비 상승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노선 구성도 중요하다. 장거리 고수익 노선이나 화물 비중이 큰 항공사는 같은 유가에도 방어력이 다르다. 화물 운임이 좋으면 여객 부진을 상쇄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가 급등기라도 수요가 받쳐주고 전가가 빠른 회사는 주가가 덜 빠지기도 한다. '유가 상승은 항공주 악재'라는 공식이 늘 같은 강도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실적 발표에서 확인할 지표
다음 분기 실적을 볼 때는 숫자 몇 개를 짚으면 된다.
- 유류비 비중: 영업비용 대비 몇 %인지. 30%를 크게 넘으면 유가 민감도가 높다는 신호다.
- 유류할증료 단계: 단계가 높고 오름폭이 가파를수록 다음 분기 요금에 전가될 여지가 크다.
- 탑승률과 화물 운임: 수요가 강하면 비용을 요금으로 넘길 여유가 생긴다.
- 환율과 헤지 비율: 외화 부채 규모와 헤지 전략이 손익 방향을 바꾼다.
정리하면 유가가 오를 때 항공주가 약한 건, 비용 증가가 요금 전가보다 먼저 그리고 더 확실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 강도는 수요와 환율, 회사별 헤지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유가 한 줄만 보고 항공주를 사고팔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