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급락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이 크게 줄었지만, 평가액 감소는 보유 주식의 시가가 내린 것이지 실제 매도가 아니다. 수급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건 목표비중과 허용범위를 벗어났을 때의 리밸런싱인데, 올해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에서 20.8%로 올리고 리밸런싱을 유예했다. 연기금 수급 뉴스를 볼 땐 평가액인지 순매매인지, 실제 비중과 목표비중의 격차, 허용범위 이탈 여부를 구분해 봐야 한다.

올해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이 크게 줄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 언론은 5월 말 이후 보유 주식을 그대로 뒀다고 가정하면 평가액이 180조원 넘게 줄었을 것으로 추산했고,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은 182조원 감소를 거론했다. 다만 이 182조원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가진 287개 상장사의 평가액을 비교한 값으로, 기금 전체의 손익과는 구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평가액 감소가 실제 매도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가액은 보유한 주식의 시가를 그날그날 다시 매긴 숫자다. 주가가 내리면 한 주도 팔지 않아도 평가액은 줄어든다. 실제로 민주당은 리밸런싱 유예 이후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추가로 사지도, 대규모로 팔지도 않았다는 점을 들어 증시 부양 동원 주장을 반박했다. 수급을 읽으려면 '평가액'과 '사고판 금액'을 먼저 떼어놓아야 한다.

Jueon Kim 김주언
연기금이 시장 수급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경로는 평가액이 아니라 리밸런싱이다. 국민연금은 자산군별 목표비중을 정해두고 그 주위에 허용범위를 둔다. 전략적 배분(SAA) ±3%포인트에 전술적 배분(TAA) ±2%포인트를 더해, 대략 목표의 ±5%포인트 안에서는 기계적으로 사고팔지 않는다.
문제는 주가가 오르면 가만히 있어도 국내주식 비중이 올라간다는 데 있다. 코스피 급등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시장 추정 29%대까지 높아졌다. 목표를 크게 웃돌아 허용범위를 벗어나면, 비싸진 국내주식을 팔아 다른 자산을 채우는 리밸런싱이 작동한다. 이때 국민연금은 오르는 시장에서 '순매도' 주체가 되고, 그만큼 수급엔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올해 국민연금은 그 매도를 미뤘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연초 허용범위 이탈 시의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고, 5월 말에는 국내주식 목표비중 자체를 14.9%에서 20.8%로 끌어올렸다. 적용은 6월 말부터다. 목표를 올리면 실제 비중과의 격차가 줄어 팔아야 할 양도 줄어든다. 최대 허용범위도 한 차례 더 넓혔는데, 구체적 폭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결정은 국감에서 공방거리가 됐다. 야당은 노후자금이 증시 부양에 동원된 것 아니냐고 추궁했고, 공단은 정치적 개입을 부인했다. 다만 목표 20.8%와 시장 추정 29%대 사이엔 여전히 격차가 있어, 파이낸셜뉴스 등은 리밸런싱 압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국내주식을 팔아 해외주식을 사들이면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매도 속도를 늦추는 변수다.
연기금 수급 기사를 볼 때는 숫자의 성격부터 가려야 한다.
평가액이 급감했다는 헤드라인만으로 "국민연금이 팔아서 증시가 빠졌다"고 읽으면 인과가 뒤집힌다. 대개는 주가가 먼저 빠져 평가액이 준 것이고, 실제 매도 여부는 비중과 허용범위, 유예 결정을 함께 봐야 비로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