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3분기 매출 467억 달러로 전년보다 50.9% 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AI 반도체가 포함된 고성능컴퓨팅 부문이 매출의 68%를 차지했다. 이는 AI 칩 수요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신호지만, TSMC는 로직 파운드리여서 국내 메모리·장비·파운드리에는 저마다 다른 경로로 전해진다. 주가 변동성과 별개로 HBM 탑재량과 빅테크 자체 칩 채택, TSMC의 4분기 가이던스를 수요를 가늠할 지표로 봐야 한다.
TSMC가 15일 발표한 3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를 위에서 넘어섰다. 매출은 467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0.9%, 전 분기보다 17.6% 늘며 7월에 제시한 가이던스 상단(458억 달러)을 웃돌았다. 순이익은 대만달러 기준으로 전년 대비 68.7% 급증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매출 구성이다. AI 반도체를 포함한 고성능컴퓨팅(HPC) 부문이 전체 매출의 68%를 차지했다. 1년 전 57%에서 한 해 만에 비중이 크게 뛰었고, 직전 분기 대비로도 22% 늘었다. 스마트폰(21%)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Adriano Ponte Abreu
실적만 보면 AI 칩 수요가 둔화됐다는 신호는 찾기 어렵다. TSMC는 4분기 매출로 523억~543억 달러를 제시했는데, 3분기보다 12~16% 더 늘어난 수준이다. 반도체 공급망 최상단에 있는 기업이 다음 분기 두 자릿수 성장을 자신했다는 점은 AI 투자 사이클이 당장 멈추지는 않는다는 방증에 가깝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TSMC는 GPU와 AI 가속기 같은 로직 칩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이지, 메모리 회사가 아니다. 그래서 '역대 실적'이라는 헤드라인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실적으로 곧장 치환하면 오독이 된다. TSMC의 숫자는 수요의 '원천'을 보여줄 뿐, 그 수요가 국내 기업으로 흘러오는 길은 따로 있다.
가장 굵은 경로는 HBM, 즉 고대역폭메모리다. TSMC가 찍어 내는 AI 가속기에는 HBM이 얹혀야 작동한다. AI 칩이 많이 팔릴수록 HBM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이고, 지난해 HBM 시장은 SK하이닉스 48%, 삼성전자 39%로 두 회사가 사실상 양분했다.
최근 흐름에서 더 중요한 변화는 빅테크의 '자체 칩' 움직임이다. 엔비디아 GPU에만 기대지 않고 직접 설계한 가속기를 늘리는 중인데, 이 칩들에도 HBM이 대량으로 들어간다.
| 자체 칩 | HBM 용량 | 공급 구도 |
|---|---|---|
| MS 마이아 300 | HBM4 288GB | 공급사 선정 주목 |
| 구글 TPU 8i | 288GB | 삼성·SK 공급 |
| 아마존 트레이니엄3 | 144GB | 전작 대비 50%↑ |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년 마이아 300을 100만 개 넘게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마이아 200의 HBM3E는 SK하이닉스가 단독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점은 '탈엔비디아'가 진행돼도 HBM이 깔릴 판 자체는 오히려 커진다는 데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AI 서버용 맞춤형 칩(ASIC)에 들어가는 HBM 비트 수요가 2024년부터 2028년 사이 35배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메모리 말고도 길은 있다. TSMC는 3분기에만 138억 달러를 설비에 투자했고 올해 누적 투자는 406억 달러에 이른다. 이 투자는 전공정 장비 발주로 이어지지만, 국내 장비·소재 기업에는 TSMC의 공급망을 거쳐 간접적으로 닿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파운드리 쪽 변수도 있다. TSMC의 첨단 공정 생산능력이 한계에 가까워지면 소화하지 못한 물량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로 넘어올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번 실적에서 2나노가 처음으로 의미 있는 매출 비중(8%)을 냈다는 점은, 최선단 공정 수요가 그만큼 빡빡하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올해 국내 반도체 대형주는 실적이 좋아도 투매가 나오는 변동성을 여러 차례 겪었다. 배경에는 AI 투자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이런 날일수록 주가 등락보다 수요의 실체를 보여 주는 지표를 따라가는 편이 유용하다.
아직 확정된 HBM 공급 계약이 쏟아진 것은 아니다. 수요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배분'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TSMC 실적은 그 방향을 확인시켜 준 신호이지, 어느 국내 기업이 얼마를 가져갈지까지 알려 주는 답은 아니다.